영주의 공방에서 현재는 언제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시간은 옆으로 미끄러지듯 흘러가, 과거의 웃음소리가 현재의 침묵 위에 겹쳐지고, 오늘의 커피 향이 지나간 오후의 모든 잔향과 섞였다.
등 뒤에서 희미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영주가 왔음을 알렸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묵직한 발걸음, 부드럽게 목을 가다듬는 소리, 영주가 누군가의 사적인 순간에 들어서기 전에 항상 자신을 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방식이었다.
"이올렛! 왔구나."
영주가 반갑지만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앞치마에는 밀가루 같은 흙 가루가 묻어 있었고, 머리는 홀치기염색 반다나로 질끈 묶여 있었다. 그녀는 더 가까이 다가왔지만, 너무 가까이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한테 차이지만 않는다면 초대받지 않은 공간엔 결코 침범하지 않았다.
올렛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애교섞인 표정으로 영주를 안았다.
"영주야~. 보고싶었어."
영주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 미소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잘 왔어. 아무 때나, 기억하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오라 했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올렛의 얼굴을 살폈다.
"그 인형들 아직 잊지 못해서 온 거야?"
그 질문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영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냥..보고 싶었던 것 같아. 그것들이 아직도 있는지…."
그녀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흐릿하게 말을 흐렸다. 영주는 시선을 선반으로 옮겨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어디 가지 않아요~ 너희 둘이 헤어진 후 한 번은 거의 버릴 뻔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 어떤 것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게 더 나아. 누구 한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것이니까."
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영주는 카운터 가장자리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얘기하고 싶어요,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요 올렛씨?"
올렛은 망설였다. "둘 다."
한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무거웠지만, 억압적이지는 않았다. 마치 방이 언제나 이 순간, 이 침묵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마침내, 올렛이 물었다.
"그것들을 만들었던 날 기억해?"
올렛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너랑 우현이가 누구의 흙이 더 나은지를 두고 전쟁을 벌이기로 했던 날 말하는 거니? 아마 흙에 관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
영주가 이제는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올렛이 동의했다.
"언제나 너희 둘에 관한 것이었지. 너희는 너무나 달랐지만, 마치 두 개의 궤도를 도는 달처럼 함께 움직였어. 나는 너희가 결국 서로를 미워하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사랑하게 될지 궁금하곤 했지 아마!"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네."
우현이 만들었던 접시도 그곳에 있었다. 약간 휘어져 있었고, 푸른색 흙물이 의도치 않게 나선형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흰 들판에 갇힌 폭풍처럼 보였다. 영주가 다가와 그 접시를 집어 들고 손으로 돌려보았다.
"우현이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지."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쓸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것이 솔직하다고 생각했어. 때로는 흠이 있는 작품이 가장 오래 남기도 해. 매일 손이 가는 그런 작품들이."
올렛은 우현의 실망스러운 표정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순간, 침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 모든 것의 무게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를 그리워하니?"
영주가 부드럽게 물었다. 올렛은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리움보다 더 복잡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누군가가 피부 바로 아래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들이 사라지고, 그 부재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형상이 되어버린 기묘한 아픔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 뒤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영주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올렛은 선반 위의 융합된 도자기 인형을 응시했다. 그들의 손은 마치 가마 속의 불이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든 것처럼 여전히 굳게 잡혀 있었다.
그녀는 가슴속에서 작은 용기의 불씨를 느꼈다. 어쩌면 그녀는 손을 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지워야 하는 걸까?, 왜 아직도 우현을 잊지 못하는 걸까? 올렛은 지금 너무 성공했고 단단해졌지만 마음속 공허함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주는 그녀의 마음을 읽는 듯했다.
"혼자 할 필요 없어. 원한다면, 내가 네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에게 전해줄 수도 있어. 아니면, 그냥 들어주는 것만 필요하다면, 들어줄 수도 있고."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왔고, 그 부드러움에 그녀는 놀랐다. 그것은 절망과 분노에 찬 실연의 눈물이 아니라, 아픔만큼이나 위로가 되는 그런 종류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다시 선반을 바라보았다. 이가 빠진 컵, 휘어진 접시, 그리고 끈기의 증거인 작은 동물 조각상들.
그녀는 푸른 나선형 무늬가 있는 접시를 집어 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쓸었다. 흙은 예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고, 마치 그것을 빚었던 손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녀는 접시를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때까지 시간을 늘렸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마지막 햇살에 젖어 있었다. 영주는 그녀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안쪽으로 가 있었다. 올렛은 접시를 안은 채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바깥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여 거리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도시는 언제나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 두 명이 서로 부딪히며 웃으며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기억의 몽타주가 깜박이다가 가라앉으며, 올렛의 가슴에 따뜻함을 남겼다. 그녀는 다시 우현의 접시에 그려진 푸른 나선을 더듬고 조심스럽게 선반에 내려놓았다. 그 손들은 여전히 융합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그들이 과연 헤어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늦은 햇살이 높은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탁자 위에 금빛 줄무늬를 만들었다.
올렛은 따스한 햇살을 등지고 영주가 "가는 길에 마시라"며 건네준 라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앉아 있었다. 거품이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수염 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혀로 핥아내며 따뜻함이 그녀를 현재에 붙잡아두도록 했다.
탁자 위에는 만들어지는 과정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작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갓 껍데기를 깬 계란처럼 날것 그대로이고 창백하며 부서지기 쉬웠다. 어떤 것들은 가마에서 갓 나온 듯, 유약이 아직 희미하게 따뜻했다.
그녀는 얕은 사발의 옆면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열기 때문에 흙이 휘어진 물결 모양을 느꼈다.
우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손, 그의 웃음소리, 그가 사과나 설명 없이 그녀의 공간으로 스스럼없이 들어오던 방식. 그 기억은 이제 고통스럽기보다는, 마치 긴 수영을 마치고 난 후 남는 은근한 아픔과 같았다.
“그때 네가 느꼈던 그 떨림은 진짜였던 걸까?”
“그러게.. 나도 그 답을 찾고 싶어.”
“응. 우현의 추억을 찾아다니는 건, 그 추억이 기억 속에서 살아 있으니까, 기억은 결국 네 안에 있으니까... 여행이 끝날수록 알게 되면...”
어딘가에 다닌다는 흔적, 근육이 천천히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싱크대 위 벽에는 금이 간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줄지어 펄럭였다. 대부분은 오래된 사진이었고, 색깔은 주황색과 파란색으로 바래 있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활짝 웃고 있는 우현의 모습이었다. 그들 뒤의 골목은 햇빛이 가득하고 좁았고, 잠시 동안, 그의 얼굴에 담긴 행복이 너무나 순수하고 맑아서 마치 약속처럼 느껴졌다.
올렛은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인이 혈관 속에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느꼈다. 바깥세상은 불확실하지만 밝게 빛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자국이 있는 도자기 인형을 집어 들고 잠시 동안 손에 쥐었다. 엄지손가락은 융합된 두 손 사이의 홈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요점일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녀는 인형을 선반에 내려놓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청담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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