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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C마이너' 1장. 베토벤 심포니 다단조, Op.67 ‘운명’ .신작 소설

Writer Lumi

by lumibypeppy 2025. 7.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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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8월 10일 토요일.

 
올렛은 왜 여기에 있을까?
 

 

도예 공방의 추억 속으로

휴가 첫날,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지금 올렛은 영주의 도예 공방 앞에 있고, 지난 10분 동안 자율주행차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온도는 적절했고, 공조 장치는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그녀의 손엔 땀이 맺혀 있었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큰 발표를 앞둔 학생처럼, 첫 데이트를 앞둔 여자처럼, 그녀에겐 낯설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방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외관은 예전보다 조금 더 빛이 바랬고, 간판은 햇빛을 견디느라 윤기를 잃었지만, 그곳에는 묘한 활기가 있었다. 마당에는 새로 심은 듯한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고, 창틀 위엔 알록달록한 도자기 장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올렛은 그 장면 앞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생각했다. 모든 게 그대로인 듯하지만, 정작 자신만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올렛은 천천히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차가운 손끝이 따뜻한 천을 누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녀의 손이 이렇게... 비즈니스맨 같아졌을까?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았다. 
 
전에는 활대를 쥐었고, 무대 조명을 받으며 소리를 길들였던 손이었다. 그렇게 방향을 바꾸었고, 새로운 언어에 능숙해졌고, 낯선 무대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이력이 그녀의 삶과 너무 멀게 느껴졌다.
 
선팅 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방은 그대로였다. 유약이 말라가는 소리, 흙이 물레 위에서 부서졌다가 다시 모양을 갖추는 감각. 그것이 바이올린의 울림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공간이 좋았고, 이 시간을 잊지 못한 것이었다.
 
차문을 열었다. 8월의 공기가 즉시 그녀를 덮쳤다. 뜨거웠지만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긴장인지, 기억의 반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상했다. 따뜻한데도 팔에 소름이 돋았다. 뜨거운 방에서 겨울 공기로 나가는 것처럼, 모든 신경 말단을 한 번에 깨우는 그런 충격. 긴장인지, 기억의 반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공방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햇볕에 달궈진 금속 문손잡이는 따뜻했고, 그 소박하고 정직한 온기가 손바닥에 조용히 번졌다. 다만 조금 더 낡고, 많은 손에 의해 모서리가 매끄러워졌을 뿐이었다.  딸랑, 익숙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추억이 살아있는 공간 

영주의 도예 작업실 안, 빛은 바깥세상과는 늘 달랐다. 작업대와 울퉁불퉁한 선반 가장자리에 빽빽하게 고여 앉아 먼지 입자를 마치 고대 그림의 붓 자국처럼 찬란하게 드러냈다. 동시에 방 안은 억압적이고 기억들로 가득 찬 듯했다.
 
젖은 흙냄새와 가마에서 배어나온 온기, 익숙한 유약의 잔향이 코끝을 찔렀다. 벽에는 최근 덧칠한 듯한 색감이 은은했고, 작은 선반 위엔 갓 만든 듯한 조각들이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채 놓여 있었다. 이곳은 여전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만큼 살아 있었다. 기억은 감각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올렛은 조용히 문을 닫았고, 딸랑, 종소리가 한 번 더 울린 뒤 침묵이 내려앉았다. 부드러운 파도처럼 젖은 흙 냄새와 오래된 가마 연기 잔해가 흘러 들어왔다. 학창 시절부터 이곳을 방문했던 터라, 그녀의 감각은 의식적인 생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문에 칠해진 페인트의 질감, 시멘트 바닥에서 부츠를 뚫고 올라오는 기분 좋은 냉기, 싱크대 옆 깨진 창문 틈으로 희미하게,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빵 굽는 냄새로 그 순간,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다.
 
그녀의 시선은 천천히 선반 사이를 거닐며 미완성된 찻잔, 흘러내린 유약 자국이 있는 꽃병, 뒤틀린 손 그림 문양으로 장식된 그릇 위를 천천히 훑었다.
 
작업대 위에는 마르다만 붓과 유약 자국이 남아 있었고, 선반 아래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흙덩이들과 작업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구석에는 물레가 조용히 서 있었고, 물컵 속엔 방금 사용된 듯한 도구들이 담겨 있었다. 
 
근데 영주는 어디 간 걸까? 누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것만 같은 기척이 느껴졌고, 그녀는 그 흐트러진 흔적들 사이로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싱크대 위 높은 선반에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듯한 인형 한 쌍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손은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애틋하게 맞잡고 있었지만, 작고 투박했으며, 너무 오래 가마에 있었던 탓에 표면은 뒤틀리고 움푹 패어 있었다.
 
오른쪽 인형은 비밀을 듣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있었고, 왼쪽 인형은 키가 조금 더 컸으며 푸른 유약 자국이 뺨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설픈 솜씨였고, 유약은 넘쳤으며, 물감은 번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언가 완결된 듯 보였다. 
 
올렛은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멈춰 섰다. 손가락 끝에 전율이 흘렀고, 자신의 손바닥이 저절로 인형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것들을 만지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맞잡은 손 사이의 공간을 손가락으로 표면 바로 위를 따라 그렸다. 
 
그 인형들은 그녀가 잃어버린 것과 결코 완전히 소유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그들의 침묵하고 깨지지 않는 연결 속에서 우현과 함께한  3년 동안의 낙관과 고통을 보았다.
 
그녀의 자세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눈을 세게 깜빡였다. 그녀의 시선은 책꽂이의 책들 사이에 놓인 먼지 덮인 액자에 닿았다. 사진 속 올렛의 얼굴은 차분했고, 두 개의 작은 흙 인형을 팔에 안고 입가에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약간 동그랗지만, 소녀의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껴안은 흙에 새겨진 공유된 과거를 반영하는 듯했다. 행복이 깜빡이는 불빛처럼 그녀 안에서 춤추자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회상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길고 웨이브진 검은 머리는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도자기 인형을 안고 있는 그녀의 손은 표현력이 풍부했고,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 신중했다. 그것은 존경스러운 미적 감각과 얽힌 기억에 대한 공감을 말하는 듯했다. 그녀는 큰 감정과 함께 희망찬 눈으로 미래를 향하는 강인함도 지닌 듯했다.
 

 

운명의 작은 장난 

그녀는 그 광경에 납작하게 쓰러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날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없어선 안 될 것을 흙으로 만들어보자.”
 
영주가 수업 중 각자 조각상을 만들라고 했던, 그저 평범하고 멋진 오후 중 하루였다. 다른 사람들은 만화 캐릭터나 애완동물을 만들었지만, 올렛은 아무 말 없이 우현을 만들었다. 우현도 그녀를 만들었다. 말도 약속도 없었지만, 둘은 동시에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가마가 열렸을 때, 그들의 손이 의도치 않게 융합된 것을 보고 모두 웃었다. 영주는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운명의 작은 장난"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었다. 지금은 그 장난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현재가 꾸준한 홍수처럼 그녀에게 밀려왔다. 
 
그녀는 액자를 잡으려다 멈칫하고, 제자리에 떨어뜨렸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싱크대 옆 선반에서 올렛은 낡은 머그컵을 집어 들고 정수기 물을 채웠다. 머그컵의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하고 깨져 있었지만, 손바닥 안의 따뜻함은 기분이 좋았다. 
 
그가 놓고 간 밤, 그가 하지 못한 말, 그녀가 묻지 않은 질문. 모두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창밖의 햇살은 여전히 반짝였고, 공방 안의 공기는 오래된 기억으로 짙어져 있었다.
 
9년 전 그 방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올렛이 우현 몰래 찻잔 가장자리에 삐뚤어진 콧수염을 그려 넣던 순간이 떠올랐다. "천재가 약간의 즉흥 연주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한번 볼까?" 영주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현이 도착했고 처음에는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늘 자신의 손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고, 꽤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파란 콧수염을 발견했을 때 그의 얼굴은 과장된 연극적인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누가 이랬어!!"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완벽함이!"
 
영주는 배를 잡고 웃었고, 곧 올렛도 웃기 시작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타일에 부딪혀 모든 구석을 채웠다. 우현은 엄숙한 척하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다. 열아홉 살, 날것 그대로의 행복한 웃음이었다.
 
즉시 보복이 가해졌다. 흙투성이 손으로 우현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올렛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팔뚝에 굵은 회색 선을 그었다.
 
“네가 시작했잖아.”
 
하지만 분노는 사라지고 대신 행복이 찾아왔다. 영주는 우현을 격려하기 위해 흙덩이를 그의 어깨에 부드럽게 던졌다. 짧았지만 그 싸움은 장관이었다. 몇 분 만에 세 사람 모두 안료로 얼룩덜룩해졌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뺨은 붉어졌다. 숨을 헐떡이고 웃으며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졌고, 공방 밖 세상은 잠시 잊혀졌다.
 
그녀는 어느 오후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으로 우현은 완성된 컵을 그녀 앞에 놓고 말했다. "이 컵은 너를 꼭 닮았어." 유약은 의도치 않은 색조의 소용돌이였고, 가장자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꽤 아름답게 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거 진짜로 구워질까?" 그녀는 정말 진지하게 물었다. 
 
"글쎄, 아직 폭발하진 않았잖아."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가벼운 농담 속에, 지금 와서야 감정이 묻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머그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영주가 말했다.
 

 
“때로는 그게 최선일 수도 있어.”
 
올렛의 기억은 그의 의식 속으로 활짝 펼쳐졌다. 오래된 장면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그녀는 가마 앞에 나란히 앉아, 유리창 너머 불꽃을 바라보던 순간. 그의 손이, 자기 손 위에 살짝 얹어졌던 그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전부였던 그 시간 속에 흙의 무게, 끈적거림, 설레는 약속의 떨림을 거의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강하게 떠올린 기억은 감정적인 것이었다. 
 
함께 있을 때 작은 사건조차 웃음거리가 되었던 편안함. 작업실 밖 세상은 잔인하고 떠들썩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정말로 부서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열아홉 살이 되어 손가락은 이미 흙으로 회색빛이었고, 손은 손목까지 차가운 흙탕물에 담가져 있었다. 우현은 이를 악물고 작업대 너머로 필사적으로 애썼다. 흙은 그의 손길에 쉽게 반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강하게 다루다가, 마침내 마치 생명을 불어넣듯 이상하게도 부드럽게 다루었다. 그의 셔츠는 두 사이즈나 컸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으며, 머리카락은 이미 집중과 땀으로 곱슬거려 있었다.
 
영주는 마른 가루가 묻은 손, 빠르고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넓은 방 안의 그들과 다른 젊은이들 사이를 거닐었다. 영주는 완성된 작품들을 낡은 쟁반에 배열하고 숨겨진 지문이나 밑바닥의 균열을 찾았다.
 
"잘했어, 둘 다."
 
그녀는 좀 더 진지하게, 약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건 특별해."
 
올렛의 작품은 텅 빈 얼굴에 손을 내민 키 크고 마른 남자였다. 우현의 작품은 더 작고 튼튼했으며, 왼쪽 눈 대신 파란 점이 있고 비뚤어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인형들은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건조 과정에서 그들의 손은 미끄러져 서로를 발견했다. 마침내 너무 꽉 잡고 있어서 떼어낼 수 없었다.
 
가마 소성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영주는 그들에게 열병 걸린 눈처럼 붉게 타오르는 작은 가마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공기는 찬란하게 타올랐고 혀끝에 날이 선 듯한 뜨거운 쇳내가 감돌았다. 기대로 가슴이 타오르는 올렛은 유리창에 코를 대고 피부에 느껴지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 바로 옆에 서서 우현은 가마 안에서 흙이 굳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마가 식자 영주는 인형들을 들어 올렸고, 그들의 표면은 잔잔한 강물처럼 흐르는 유약으로 변해 있었다.
 
"서로 꼭 붙잡고 있었어."
 
그녀는 부드럽게, 약간 경외감을 담아 말했다.
 
"불조차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었나 봐."
 
우현은 두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환호했다. 올렛은 그에게 한 번도 놀리지 않았다. 그저 활짝 웃으며 자랑스러워했고, 심장은 식어가는 가마처럼 두근거렸다.
 
영주는 낡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섬광은 잠시 동안 그들의 눈에 잔상을 남겼다. 그 작은 순간 동안 우주는 내부에서 빛나는 듯했고, 완벽하고 깨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Pen Name. Peppylumi
E-Mail. peppylumi@xeplum.com
Agency. Xep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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