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화와 함께할 선율: Spotify와 Youtube music에 담아 둔 [신작소설 ‘러브C마이너’] 플레이리스트의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올렛의 마음을 더욱 깊이 느끼실 거예요.
2021년 3월 28일 일요일.
그리고 날이 밝고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현의 세계는 한밤중처럼 칙칙했다.
“식사하시고 1시에 다시 모여주세요!”
그는 틈틈이 영화 촬영장에서 어시스턴트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우현은 마치 올렛의 손을 잡은 듯 휴대폰을 응시했다. 어제의 찬란함은 한 걸음 더 멀어졌다. 그는 올렛의 목소리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귀에 들어온 건 조명팀이 식사를 끝내는 소리뿐. 화면에는 그녀의 이름과 단도직입적인 한 줄.
"만나고 싶어. 시간 돼?"
순간 모든 감각이 되살아났다. 심장이 주저앉을 듯 쿵쾅거렸다. 우현은 메시지를 반복해 읽으며 뜻을 되새겼다.
“알바는 언제 끝나?”
또 그녀였다. 두 번째 메시지였다. 아직 답장을 쓰지도 못했는데, 마치 마음을 읽힌 기분이었다. 어젯밤의 선명함은 오늘의 풍경 속에서 금세 잊히는 꿈처럼 희미해졌다. 강변을 걸을 때는 아무런 장벽도 없었지만, 그 단순함은 이제 사라졌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심장이 쿵쾅거려 타이핑하기가 어려웠다.
스태프들은 샌드위치를 마치고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우현만 남았다.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고, 그의 침묵은 앞선 침묵과 전혀 달랐다. 올렛은 이렇게 오래 말을 아낀 적이 없었기에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동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홀로 남아 들판과 도시 사이의 거리, 그리고 어제와 오늘 사이의 거리를 헤아렸다. 마치 깊은 꿈에서 막 깨어난 듯.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타이핑했다.
“응, 보고싶긴 한데… 7시는 돼야 끝날 것 같아.”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보고 싶어...”
한 단어의 텍스트가 아침의 모든 의구심을 날려 버렸다. 침묵과 희망을 나누는 전환 속에 그는 어지러웠다. 이번엔 망설임 없이 답장했다.
“여기 파주야. 서울 가려면 두 시간은 걸려.”
시간은 마치 오두막처럼 순식간에 흘렀다.
“지금 당장 보고 싶어. 나도 거기 갈래.”
‘정말? 근데 촬영이 길어질지도 몰라...’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현은 세트장 너머로 뻗어 있는 길 끝을 바라보았다. 거기, 그녀가 이미 발을 떼고 있을 것만 같았다. 거리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자신감이 그를 이끌었다. 그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오늘 하루 종일 시간 있어. 그리고 너랑 드라이브하고 싶어.”
메시지를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현에게는 차가 없었다. 로맨틱한 드라이브라니, 핸들과 액셀러레이터 페달이 필수였다. 현실의 그는 지하철 첫차와 막차 사이를 전전하는 대학생이었다. 차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목이 화끈거렸다. 별의별 계산이 머릿속을 질주했다. 우현은 심호흡을 하고 타이핑을 하자 모든 망설임이 일시에 증발됐다.
“그럼 이따 봐”
세트장에서는 아무것도 제때 도착하지 않았고, 오늘도 일정은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가까이 두고 메시지를 다시 받길 바라면서도, 얼마나 늦었는지 걱정되고 있었다.
정문이 보였고, 가끔은 어울리지 않는 차 한 대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번엔 테슬라 모델S P100D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멈춰 서면서 얇은 먼지 층이 생겼다.
감독은 또다시 야근을 하며 저녁 식사 시간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우현의 손은 얼어붙은 케이블을 감긴 듯 감각이 없었고, 누군가 모래주머니가 없어졌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평소처럼 직접 찾아야 했다. 움직일 때마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편한 설렘을 알아차릴 틈도 없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올렛의 마지막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기다릴게."
이모티콘을 쓰든 다른 단어를 쓰든 올렛은 항상 정확하고 요점만 짚었다. 우현은 그녀가 테슬라, 즉 합성 가죽과 열기로 가득한 차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때까지는.
오늘 일찍 모자를 썼거나 머리를 좀 더 잘 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제와 똑같은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파카 밑단은 운동화 위로 닳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관점에서 스튜디오 전체는 마치 상처 같았다. 벌어진, 산업적인 공간, 결코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지 못하는 푸른빛으로 맥박 치는 모습이었다. 올렛은 운전석에 기대앉아 신발을 벗고 페달 끝에 발목을 얹은 채, 휴대폰 헤드라인을 훑어보고 있었지만, 정작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꼭 참석해야된다!" 그녀는 열어보지도 않고 삭제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건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뿐이었는데, 그 메시지의 침묵은 그녀가 듣고 있던 리처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모델S P100D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마놀로 스웨이드 펌프스를 신은 매끈한 다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캐멀빛 맥스마라 아뜰리에 코트 자락 아래로 샴페인 빛이 감도는 실크 슬립 미니스커트가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짧은 움직임에 깊은 슬릿이 벌어지며, 매끈한 허벅지 안쪽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냈다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일어서자, 부드러운 아이보리색 더 로우 터틀넥이 그녀의 살결에 스며들듯 어우러졌다. 까르띠에 탱크 루이는 그녀의 왼쪽 손목에서 은은한 금빛 곡선을 그렸고, 손에 들린 보테가 베네타 클러치는 그녀의 존재감을 완성했다.
그녀는 차 문을 닫고, 잠시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커피차와 메인 스테이지 사이를 오가는 액션팀과 스태프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편안한 차림에 검게 그을린 얼굴과 더러운 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리듬은 이상하리만치 규칙적이었다. 빠르고 정신없었지만, 결코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 때마다 우현이 무리의 끝자락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약간 비뚤어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러운 우아함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올렛은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음악을 끄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장비들의 둔탁한 금속성 쨍그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조감독이 카운트다운을 외치자 모든 스태프가 분주히 움직이고, "컷!"이라는 말에 다시 멈춰 섰다. 곧 스태프들의 마지막 말이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우현은 장갑을 벗고 손을 비볐다. 주차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테슬라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페인트가 보닛에서 루프 유리를 거쳐 다시 트렁크 리드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었고, 스튜디오의 조명이 글라스 루프에 거울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세상의 엔트로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차였다. 아스팔트에 기름얼룩하나 남기지 않는 유일한 차였다.
오늘의 일을 끝냈으니 이제 떠날 수 있다. 상상했던 것만큼이나 끔찍했다. 눈은 퉁퉁 부었고, 입술에는 기억나지 않는 흉터가 있었다. 배낭 끈을 단단히 조이고 밖으로 나갔다.
올렛은 시동을 걸기 전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백미러를 통해 우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이가 아니라, 국경을 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였다.
그녀가 차 문을 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공기는 시원하고 땀이 흘렀으며, 그의 손가락 마디는 말라붙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고 손을 뻗어 피를 닦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올렛은 목을 가다듬고 에어컨 조절 장치를 가리켰다. "춥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춥지 않아." "추워?" "이젠 춥지 않아." 그녀의 미소는 희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히터가 켜지기를 기다리며 잠시 앉아 있었다. 우현은 차 안을 둘러보았다. 컵 홀더에 놓인 빈 텀블러와 대시보드에 쌓인 미세먼지에 시선이 쏠렸다.
"잘 어울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효율적이고 조용하고 빠르지만, 남들은 절대 알아채지 못할 거야."
그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치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올렛은 웃음을 터뜨리며 긴장이 살짝 풀리고 있었다.
"칭찬을 정말 못 하잖아."
두 사람은 동시에 창밖,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황혼빛 속에서 보안등이 주차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자 바깥세상은 사라지고 차와 그들, 그리고 기다림만 남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우현이 조용히 말하며 그의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익숙해. 항상 사람 기다리게 돼."
그는 항의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허세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연약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기다리고 싶지 않으면 기다릴 필요 없어." 우현이 말했다.
그녀는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기다리고 싶지는 않지만, 기다리고 싶어."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짙어지며 말없는 유대감을 형성했다.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어디로 갈까?”
올렛의 질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집까지 데려다 줄까?", "집만 아니면 돼."
그와 그녀는 동시에 서로 상반된 말을 꺼냈다. 올렛은 마치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운전했다. 고속도로는 그들을 세트장에서 멀어지게 했고, 둘 다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를 이끌었다. 지평선 위로 빛나는 도시가 아득한 약속처럼 보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조용해요."
"좀 피곤할 뿐이에요."
그녀는 짧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 후 10분 동안, 그들은 파주가 뒤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교외는 강변으로 이어졌고, 그다음에는 빛나고 광활한 한강으로 이어졌다. 한강은 그들이 지나간 길과 평행하게 흐르고 있었고, 우현은 그것을 타임라인처럼 상상했다.
삶의 매 순간이 작은 물결처럼, 그리고 매 선택이 새로운 지류처럼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그는 아버지, 빈 아파트, 자신의 꿈, 그리고 강둑에 매달린 소박하지만 끈질긴 물건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았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우현이 말했다. 어색했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들 사이의 침묵은 편안하고, 회복력이 있었으며, 새로운 꿈의 가능성으로 살아있는 듯했다.
가장 완벽했던 하루가 지나고,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파주의 먼지 낀 촬영장과 서울의 화려함, 그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두 사람의 세계는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13장에서 올렛은 그 거리를 단숨에 달려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한 마디, ‘기다림에 익숙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낭만적인 인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닿지 않는 엄마의 멜로디를 기다리며,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가 새겨놓은 가장 아픈 흉터이자 익숙한 체념이었습니다.
‘집만 아니면 된다’는 두 사람의 같은 마음은, 과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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