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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색달해변의 여름밤. 루미의 소설 [러브C마이너] 선공개

Writer Lumi

by lumibypeppy 2025. 8.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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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 내면의 성찰] 16장. 색달해변의 여름밤

🎵 이번 화와 함께할 선율: Spotify와 Youtube music에 담아 둔 [신작소설 ‘러브C마이너’] 플레이리스트의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올렛의 마음을 더욱 깊이 느끼실 거예요.

 

 

색달해변을 다시 찾은 그녀

 

1. 지워진 발자국, 공허한 메아리

 

2030년 8월 13일 화요일.

 

올렛은 공항에서 해변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과즙처럼 달콤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미끄러지듯 달리던 차 안은 아늑한 고치 같았지만, 그녀의 상상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색달해변 산책로에 발을 내디뎠을 땐,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녀는 산책로 끝에서 스니커즈를 벗어던졌다. 모래는 익숙한 온기를 품고 있었고,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감촉은 고운 밀가루처럼 부드러웠다. 8월이었지만 밤바람은 변덕스럽게 불어왔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에 린넨 치마가 종아리에 휘감겼고, 정강이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거인이 내쉬는 숨결 같기도 한 바닷소리는 끊임없이 밀려오며 마음을 놓이게 하는,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목적 없이 걸었고, 화면의 인공적인 불빛이 허벅지 위에서 푸른빛으로 일렁였다. 

 

파도는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게 해변을 적셨고, 그녀가 미처 뒤돌아보기도 전에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그 편이 옳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뒤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 ‘앞’이 더는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지라도.

 

그녀는 휴대폰 화면 위로 손바닥을 덮고 눈을 감았다. 세상의 감각이 촉각으로 모여들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 짭조름한 바다 공기, 그리고 저 멀리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낮은 속삭임. 등 뒤로는 신라호텔의 불빛이 아른거리며 길 위에 반짝이는 조각들을 흩뿌렸지만, 밤은 온전히 바다와 그 끝없는 교향곡의 것이었다.

 

우현이 여기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는 분명 엔지니어들과 그들의 소수점 강박에 대해 비꼬는 농담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받은편지함이니 현실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잊게 만들었을 테지. 한때 올렛은 그런 모습을 치기 어리다고 여겼다. 

 

젖은 모래와 마른 모래의 경계에 앉아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자세였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사진에서 봤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이유 없이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너무 부풀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풍선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주의 별들은 서울의 것보다 한층 날카로웠다. 더 가깝고 뾰족해서, 손을 잘못 뻗으면 베일 것만 같았다. 파도만으로 충분했기에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해냈어." 

 

그녀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해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이게 당신이 원했던 거잖아, 우현아. 이게 내가 해주길 바랐던 거잖아.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치 정해진 순서에서 중요한 단계를 빠뜨린 기분이었다. 주석 없는 테스트 케이스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코드 한 줄처럼.

 

그녀는 눈을 감고 우현이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리려 애썼다. 마지막으로 했던 정확한 단어들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중요했던 말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메아리치며, 정작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그 말들.

 

"뒤처지는 사람들을 잊지 마.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녀는 감상적이라며 웃어넘겼었다. 이제, 바람이 발가락 사이로 모래를 실어 나르고 파도의 리듬이 심장 박동과 겹쳐질 때, 그녀는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감성은 논리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논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우현은 언제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한한 지혜 속에서 그녀만이 잊고 있었을 뿐. 그녀는 눈을 감고 소리 내어 속삭였다.

 

"우현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전부 잊어버렸어."

 

고백은 고해성사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바다는 무심히 그 말을 삼켰고, 그녀의 목소리는 소금기와 거품의 속삭임으로 흩어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파도가 기억하는 그녀의 우주

 

2. 파도가 연주하는 기억의 전주곡

풍경은 거의 그대로였다. 텅 빈 밤의 광활함, 호텔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빛, 그리고 물소리. 하지만 이제 기억의 한구석에서 무언가 일렁였다.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깜빡이는 잔상. 바다의 울림이 조율 포크가 되어 색과 열기, 환희로 가득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그녀는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면은 더 단순하게, 더 밝게, 더 생생하게 되감겼다. 같은 해변, 같은 하늘이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물소리가 그녀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의식은 몇 해 전 여름으로, 세상이 광활했고 아직 무언가를 잊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파도가 밀려왔고, 그 소리와 함께 시간도 역류했다.

 

비키니로 매력을 보이고 싶었던 올렛

 

3. 다이아몬드 빛으로 가득했던 여름

 

2023년 8월 21일 월요일.

 

그해 8월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열기가 시간을 앞으로 떠밀었고, 제주의 하늘은 여름 햇살을 모래 위에 그대로 쏟아붓고 있었다. 올렛은 눈부심에 눈을 찡그렸다. 세상이 온통 꿀빛 아지랑이에 둘러싸인 듯했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청록색과 푸른색의 그러데이션 위로 다이아몬드 같은 햇살이 반짝였다. 오후였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우현은 이미 웃통을 벗어 던지고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가 깔고 앉은 수건을 휙 빼내 들고는 그대로 물가를 향해 내달렸다. 올렛은 애써 무시하는 척 선크림을 만지작거렸지만, 그를 향한 희미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감추지는 못했다.

 

이것은 그들의 첫 여행이었다. 제주로 온 것도, 함께 온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공항에서 모든 환승 시간을 꼼꼼히 챙겼다. 해변에서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태양의 열기가 뼛속까지 스미게 두었다. 수영복은 새로 산 것이었고, 뜻밖에도 과감한 디자인이었다. 

 

작년 같았으면 눈에 띄는 데다 실용적이지 않다며 지나쳤을 새하얀 리조트 비키니와 얇은 시스루 커버업. 하지만 오늘, 그녀는 조금 더 단정하게, 그러나 분명히 빛나기로 마음먹었다. 우현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는 파도에 맞서 팔을 벌리고 발목까지 물에 잠겨 서 있었다. 마치 조수가 자신을 삼켜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가 돌아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 같은 외침이었다.

 

"올렛! 안 들어오고 거기서 조개나 줍고 있을 거야?"

 

그녀는 혀를 쏙 내밀고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뜨거운 모래가 발바닥을 데는 것을 느끼며, 일부러 몇 걸음마다 속도를 늦춰 그를 애태우는 게임을 즐겼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눈을 가렸지만, 손으로 쓸어 넘기고는 계속 달렸다.

 

물의 차가움이 먼저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숨을 헉, 들이마시며 킥킥거렸고, 작은 파도가 허벅지를 때리자 무릎이 휘청였다. 우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을 튀겼고, 그녀는 그의 가슴에 차가운 바닷물로 호를 그리며 응수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주위를 맴돌다, 이내 웃음과 서로를 만지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거품과 손길이 부서지는 소나기 속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 춤에 가까웠다. 서로를 향한 이끌림과 웃음으로 채워진, 둘만의 춤이었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한 바퀴 돌렸다. 그녀는 싫은 척 소리치며 더 깊은 물로 몸을 던졌고, 이내 밀려오는 큰 파도에 몸을 맡겼다. 우현도 따라 들어왔고, 잠시 그들은 나란히 물 위에 떠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바다가 척추를 부드럽게 감쌌다.

 

"이게 뭐가 멋진지 알아? 물은 네가 누군지 신경 안 써. 그냥 너를 받아줄 뿐이야."

 

올렛이 피식 웃었다. 

 

"네 학점을 못 봐서 그렇겠지."

 

그는 물속으로 잠수했다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불쑥 솟아올랐다. 

 

"학점 때문이 아니야, 바보야. 우리 좀 봐. 물은 모두를 똑같은 바보로 만들잖아."

 

그녀는 그 말을 곱씹었다. 수면 아래에서 그녀의 다리가 그의 다리와 얽혔다. 그의 무릎이 그녀의 무릎을 스쳤지만, 둘 다 피하지 않았다. 소금기가 눈과 입술을 따끔거리게 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불확실성을 즐겼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평소보다 부드럽고 다정했다.

 

"어렸을 때, 나는 깊은 물이 무서웠어.”, "아버지가 나를 그냥 던져 넣고는 계속 움직이라고 소리치셨지. 네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바다는 널 가라앉게 두지 않을 거라고."

 

"효과가 있었어?"

 

"아직 여기 있잖아."

 

그녀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모든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얕은 곳이 무서웠어."

 

그가 힐끗 그녀를 쳐다봤다. 그가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깊은 곳이 좋아." , "뭐가 다가올지 알 수 없잖아. 정직하지."

 

"정직하다고." 그가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듯 되뇌었다.

 

 "나는 네가 '위험하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올렛은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그들은 물 위에 떠 있었다. 해변의 사람들은 모래사장의 흐릿한 점으로 보였고, 웃음소리와 라디오 소리는 바람에 흩어졌다. 그녀는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팽팽했던 신경이 손끝을 통해 물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태양이 쇄골 위에 선을 그었고, 그들은 더 먼 곳으로 헤엄쳐 나갔다. 올렛은 보이지 않는 한계선 앞에서 멈춰 발로 물을 젓고 있었지만, 우현은 계속 나아갔다. 그는 뒤돌아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무서워?" 그가 소리쳤다.

 

그녀는 망설였다. 다음 한 걸음이 보통 가장 어려웠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앞으로 밀어냈다. 한 번 한 번의 팔 젓기에 의지를 담았다. 그를 따라잡았을 때, 그녀는 수면 아래로 머리를 담갔다가 그의 바로 옆에서 솟아올랐다. 그의 속눈썹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들은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세상이 오직 물의 원과 그들의 숨소리로 축소된 채. 올렛은 예기치 못한 무중력감을 느꼈다.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자, 그는 물속에서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얽어왔다.

 

그가 한 번 꽉 쥐었고, 그녀도 마주 쥐었다. 그들은 고요함 속에 떠 있었다. 파도의 심장박동과 그들 자신의 불규칙한 맥박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한참 후에 그가 말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해 본 적 있어?"

 

"수영 끝난 다음?"

 

"아니, 우리 말이야. 모든 것들. 너는 항상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지만, 정작 네가 뭘 원하는지는 확신이 없는 것 같아."

 

그녀는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맴돌았고, 그 울음소리가 침묵의 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천재 개발자 올렛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프로젝트나 코드, 특허 같은 것 말고.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잊지는 마."

 

그는 말을 멈추고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몸을 돌렸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네가 만드는 기술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단순하고, 어쩌면 유치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의 어조에 담긴 무언가가 그 말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는 손을 놓았지만,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의 엄지가 그녀의 손바닥을 스치며 뒤로 물러났다. 올렛은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녀는 그의 눈에서 미래 전체가 펼쳐지는 것 같다고 믿었다. 마치 그들만을 위해 쓰인 이야기처럼.

 

평소보다 큰 파도가 그들을 해안 가까이로 실어 날랐고, 마법 같던 순간은 요란하고 황홀한 웃음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발이 다시 모래에 닿았을 때, 우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들은 해변을 걸어 올라갔다. 흠뻑 젖은 채, 부끄러움도 없이, 곧바로 사라져 버릴 축축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멋진 거 보여줄까?"

 

그녀는 고민하는 척했다. "수영보다 더?" 

 

"네가 날 얼마나 믿느냐에 달렸지."

 

그녀는 대답 대신,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는 산책로를 따라 그녀와 호텔로, 바다에서 멀어져 푸른 황혼 속으로 이끌었다.

 

호텔 스위트에서의 마지막 밤

 

4.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바다

 

2030년 8월 13일 화요일.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소리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었다. 바다의 끝없는 철썩임, 마른풀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잠들기엔 너무 고집 센 갈매기의 기이한 울음소리. 그 소리들 사이의 침묵이 숨을 조여왔다. 

 

호텔 스위트에서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그 후의 고요함, 안온함, 그리고 그렇게 완전한 것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으리라는 확신. 그녀는 눈을 감고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오려 했지만,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메아리만 남기고 흩어졌다.

 

"열심히 하면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그녀는 바람에 실려 날아갈 듯 작게 속삭였다. "어떤 것들은, 애초에 고칠 수 없는 건가 봐."

 

다른 파도보다 유독 거센 파도가 밀려와 발등을 차갑게 적셨지만, 그녀는 거의 움찔하지 않았다. 그녀는 화면에 손바닥을 얹고 희미한 온기를 느끼며 그날 밤 우현의 표정을 떠올렸다. 마치 자신이 그의 우주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확실한 존재인 것처럼 바라보던 그 표정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을 때 그녀는 놀랐다. 자신에게 아직 눈물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짠맛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내 눈물인지 바다 물보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더 꽉 껴안으며, 소금기와 밤에 피는 꽃향기를 들이마셨다. 추위는 외로움보다 견디기 쉬웠다. 

 

멍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우현이 뭐라고 할지 상상했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서 모래를 털어내고 신발을 신었다. 기억의 온기가 담요처럼 그녀를 감쌌다. 앞으로의 길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전보다 덜 두려웠다.

 

"할머니를 만나면 뭔가 알게 될까." 그녀는 자신의 말이 허공에 흩어지게 두었다.

 

파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나아가며 해변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 뿐이었다.



 

Author's Note (작가의 노트)

16장 '색달해변의 여름밤'은 주인공 올렛의 내면 붕괴와 새로운 시작을 그리는 결정적인 변곡점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공허한 현재와 순수했던 과거를 대비시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과거에 흘려들었던 우현의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해"라는 말이 현재의 그녀에게 구원이 되는 과정을 통해, 독자분들께서도 올렛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느끼시길 바랍니다.

 

특히 16장. 색달해변의 여름밤은 Backstory로 '호텔 스위트룸의 마지막 밤'이 따로 있습니다. 19금 내용이라 포스팅 올리지는 못하지만 기회가 되면 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께요. 많은 관심과 사랑, 구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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